6·25전쟁 참전용사인 강석희(Kang Seok-hee) 회장(94)이 최근 뉴욕 플러싱(Flushing)에서 기자와 만나 75년 전 전장의 기억을 들려줬다. 강 회장은 2004년 뉴욕에 참전용사회를 세웠다. 당시 회원 176명 가운데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8명뿐이다. 그는 아흔이 넘은 지금도 전쟁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 회장은 1950년 전쟁이 터졌을 때 서대문구 창천동에 살던 중학교 3학년생이었다. 당시 중학교는 6년제였다. 6월 25일 전쟁이 나고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돼 피란을 가지 못한 그는 약 3개월을 인민군 치하에서 보냈다. 먹을 것이 없어 쌀을 구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혔고, 가족에게 알릴 틈도 없었다고 한다.

인민군은 강 회장과 다른 학생들을 안양까지 끌고 갔다. 전장으로 보내지기 직전 미군 전투기가 나타나 폭격을 시작했고, 혼란한 틈을 타 학생들이 달아났다. 그도 그 틈에 빠져나왔고, 숨어 지내다 국군이 서울을 되찾은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중국군이 전쟁에 들어오면서 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밀리자 강 회장은 1950년 11월 대구에서 입대했다. 열여덟 살이었다. 훈련은 20일이 전부였다. 국군 1사단 정찰대에 배치된 그는 12월 전선에 나갔고 이듬해 1월 수원 일대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정찰대는 부대 맨 앞에서 적의 위치를 찾고 길을 여는 임무를 맡았다.

한겨울에도 막사는 없었다. 땅을 파 만든 참호가 잠자리였고, 돌처럼 굳은 찬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처음에는 참호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도 어려웠지만 전투가 이어지자 공포도 무뎌졌다고 했다. 굶주리고 지쳐 '죽으면 죽는 거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다. 살아 돌아가면 어머니를 따뜻하게 부르며 효도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부대는 한강을 건너 서울을 지나 문산, 장단, 임진강 일대까지 북진했다. 문산에서는 미군 공수부대와 합동 작전도 폈다. 그는 미군 낙하산 천을 찢어 목에 두르면 부드럽고 따뜻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1951년 4월 중국군의 대공세로 부대는 다시 후퇴해야 했다. 강을 건너려다 아군 항공기가 정찰대를 적으로 착각해 공격한 일도 있었다. 본부와 연락해 아군임을 밝히고서야 공격이 멈췄다.

1951년 5월 경기도 문산 부근 고지를 공격하다 폭발에 휘말린 그는 귀가 찢어지고 한쪽 눈을 크게 다쳤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다리까지 부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고, 고향에는 이미 전사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강 회장은 "나는 정말 죽었다가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료: e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