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 '피겨 AI(Figure AI)' 본사에서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쓴 직원들이 모의 주방에서 로봇을 원격 조종하며 데이터를 수집한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인간형 로봇 '피겨 02'가 서투르게 수건을 접고 있는 동안, 이 회사는 최근 차세대 로봇 '피겨 03'을 비밀리에 훈련시키고 있으며, 이 로봇이 가정 내 집안일과 육체노동을 수행할 최초의 범용 로봇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피겨 AI는 엔비디아, 제프 베이조스, 오픈AI 등으로부터 1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390억 달러로 평가받는 등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십 년간 로봇은 공장 자동화 등 특정 작업에 국한됐지만, 최근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간처럼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적응하는 '범용 로봇' 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피겨 AI의 브렛 애드콕(Brett Adcock)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10년 안에 세계 최대 기업은 인간형 로봇 회사가 될 것"이라며 "모든 가정에 로봇이 식기세척기 정리부터 침대 정돈까지 도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로봇이 의료, 서비스를 넘어 우주 식민지 건설에도 투입될 것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과 달리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언론에 공개된 시연에서 로봇은 수건 접기는 물론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는 과정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 애드콕 CEO 역시 '피겨 03'이 출시 시점에는 가정용으로 완벽하지 않으며, 2026년경 목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봇이 새로운 작업을 배우려면 인간 '파일럿'이 직접 작업을 수행하며 촬영한 방대한 비디오 데이터가 필요하다. 회사는 이 데이터를 통해 로봇의 신경망 '헬릭스(Helix)'를 훈련시켜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큰 문제는 안전과 사회적 파장이다. AI 챗봇의 환각 현상이 로봇에게 나타날 경우, 부엌칼을 든 로봇은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애드콕 CEO는 안전 문제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사람이 로봇을 제압하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로봇이 수집하는 가정 내 사적인 데이터의 보안 문제도 과제다. 인간형 로봇의 등장은 인류를 노동에서 해방시켜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지만, 대량 실업과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켜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은 이를 어떻게 활용할 사회적 합의와 정책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