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함께 사는 ‘멀티제너레이션 홈’ 수요 급증…실용성과 경제성 갖춘 주거 형태로 부상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멀티제너레이션 홈(Multigenerational Home)’이 미국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주택 가격과 대출 금리 상승으로 젊은 층의 독립이 어려워지고, 노인 돌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사는 다세대 주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2024년 다세대 주택 구매 비중이 역대 최고인 17%를 기록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다세대 가구가 4배 이상 증가했다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족 관계의 재정립과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프리스코(Frisco)의 RE/MAX DFW 어소시에이츠의 부동산 전문가 토드 루옹(Todd Luong)은 “현재 기록적인 주택 가격과 높은 모기지 금리로 인해 많은 첫 주택 구매자들이 구매를 미루고 있다”며 “이로 인해 형제자매끼리 자금을 모아 모기지를 신청하거나 젊은 성인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세대 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면서 주택 구입비용과 생활비를 분담할 수 있고, 더 넓은 집이나 더 좋은 지역의 집을 구매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주택 개조 플랫폼 맥서블(Maxable)의 폴 다셰프스키(Paul Dashevsky) 공동 CEO는 “특히 집값이 비싼 해안가 지역에서 다세대 주택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 간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도 다세대 주택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다세대 가구의 약 3분의 1이 돌봄을 주요 이유로 꼽았으며, 이 중 25%는 성인 돌봄을 위해 함께 산다고 답했다. NAR의 2024년 주택 구매자 및 판매자 세대별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45~60세인 X세대가 가장 높은 비율(약 20%)로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다세대 주택을 고려할 때는 각 가족 구성원의 필요에 맞는 구조와 기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독립된 출입구, 넓은 문과 손잡이, 경사로 등의 접근성 시설, 별도의 주방 또는 간이주방, 전용 욕실이 있는 여러 개의 침실, 구역별 냉난방 시스템, 방음 벽과 바닥, 넓은 공용 공간 등이 있다.
다세대 주택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지하실이나 다락방을 아파트로 개조하거나 1층에 증축을 하는 방식이다. 둘째, 부속 주거 단위(ADU, Accessory Dwelling Unit)를 건축하는 것이다. ADU는 주 거주지에 붙어있거나 마당에 독립적으로 지어진 보조 주거 공간으로, 시니어 하우징 대신 노부모를 모시거나 대학을 졸업한 성인 자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새 집을 짓는 것이다. 톨 브라더스(Toll Brothers), D.R. 호튼(D.R. Horton), 테일러 모리슨(Taylor Morrison) 등 주요 건설사들은 다세대 가구를 위한 맞춤형 평면도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이웃한 콘도, 듀플렉스, 트리플렉스를 선택하는 것이다. 애틀랜타의 엥겔&뵐커스의 부동산 전문가 제레미 스미스(Jeremy Smith)는 “같은 콘도 건물 내 다른 층에 거주하는 것이 현대판 인법 스위트”라며 “가족들이 함께하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완벽한 균형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세대 주택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언더 원 루프’의 공동 저자인 존 L. 그레이엄(John L. Graham)은 “다세대 주택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라며 “재정적, 심리적 이점이 많지만, 가족 간 갈등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함께 살기 전에 장기 휴가 등으로 시험 삼아 살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한 집을 선택할 때는 장기적인 필요성과 재판매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노인이 함께 사는 경우에는 1층 생활이 가능하거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복도 등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 재판매 시에는 다세대 가구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일반 가구에도 적합한 구조인지 살펴봐야 한다.
주택 전문가들은 미국의 주택 가격이 소득 대비 계속 상승하면서 다세대 주택 트렌드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세대 주택은 향후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거 형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