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사전 통보 없는 계엄령 선포에 당혹감 표명… 캠벨 부장관 “심각한 오판이자 위법한 조치”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계엄령 선포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와 언론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이례적인 계엄 조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계엄령 선포와 관련해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었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계엄령 선포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사태의 추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순방 중인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은 자제했다.
특히 커트 캠벨(Kurt Campbell) 미 국무부 부장관은 4일(현지시간) 애스펀전략그룹(ASG) 주최 행사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심각한 오판이자 매우 문제가 있는 위법적 조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캠벨 부장관은 “대통령실 관계자를 포함해 한국의 거의 모든 대화 상대가 이번 결정에 매우 놀랐다”며 “앞으로 몇 달간 한국은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언론들도 계엄령 선포 소식을 실시간으로 타전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집중 조명했다. 영국 BBC는 이번 계엄령을 “져서는 안 되는 고액의 도박”이라고 규정하며 “결코 효과가 없을 것 같은 매우 과격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BBC는 레이프-에릭 이즐리(Leif-Eric Easley)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를 인용해 윤 대통령을 “포위당한 정치인”으로 묘사하며,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과 국회의 예산안 삭감, 거듭된 탄핵 요구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조치가 많은 한국인에게 충격을 주었고,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전 군부 통치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계엄령 선포의 근거로 제시된 ‘반국가 활동’과 ‘친북 세력’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존 닐슨-라이트(John Nilsson-Wright)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 이런 일이 일어난 건 기괴하다”며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명백한 정치적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한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특히 충격적인 것은 경제 및 군사 안보의 중추적 글로벌 파트너이자,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질서의 지지자로서 한국의 위상이 널리 알려진 현 시점에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동맹 관계의 악화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CNN 군사분석가 세드릭 레이튼(Cedric Leighton)은 “한국의 불안정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적 역량 투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주의 증진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의제로 다뤄온 미국으로서는 윤 대통령의 결정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 정부 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미국의 정권 이양기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있는 현 상황을 전략적으로 선택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11월에 임기 절반이 지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전후로 저조해 사태를 타개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척결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 국영매체 CGTN은 AFP통신을 인용해 “윤 대통령은 매우 인기 없고 무능한 지도자였으며, 그가 하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브래드 셔먼(Brad Sherman) 민주당 하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십 년간 한국 국민에게 이로웠던 민주주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의 안나 폴리나 루나(Anna Paulina Luna) 하원의원도 “혐오스럽다. 시민들은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알자지라는 영국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의 임소진 국제한국학연구소 공동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매우 급진적인 결정이자 그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며 “한국 국민들 사이에선 이것이 촉매제가 돼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4일 오전 4시 30분 윤 대통령이 계엄령 해제를 선포한 이후, 미 국무부는 ‘안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며, 향후 정국 불안정이 지속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CNN은 이번 사태를 “정치적 혼란에서 비롯된 대실패”라고 평가하며, 이같은 “특수한 사건은 정치적 교착상태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